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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종요법(호메오페시)란 무엇인가?

因緣 2014. 12. 31. 16:14

동종요법(호메오페시)에 대하여

‘모든 물질과 생체는 고유한 파동을 방사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래디에스테지> 그리고 <라디오닉스>의 주장과 개념을 뒷받침해주는 실증적인 한 예로서 호메오페시-동종요법을 거론할 수 있습니다.

이 호메오페시 치료법이 임상적으로 보여주는 객관적인 결과들을 깊게 음미해보면 우리는 ‘모든 물질은 고유한 파동을 방사하고 있다’라는 개념만으로는 또 이해되지 않는 새로운 현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요약하여 말하자면, 물질 그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 없어진 상태에서도 그 파동은 여전히 계속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적인 개념인 <파동>을 넘어서서 <정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지않을 수 없게되는 것이지요.

 

 

호메오페시란 무엇인가?
--유럽에서 이백년 동안이나 사용되어져오고 있는 불가사의한 치료요법--


호메오페시(Homeopathy)는 우리말로는 ‘동독용법(동독요법)’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동종요법(동종요법)’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이 요법은 아직 국내에서는 아는 사람이 적지만 현재 서구 대체의학에서는 카이로프라틱(척추교정요법)과 함께 대체의료기술의 아주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호메오페시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200년전인 18세기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호메오페시 치료법의 창시자인 독일인 의학자인 사뮤엘 하네만(Samuel Hahnemann) 박사는 의사라는 직업외에도 실험약리학자, 심리학자 등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어학의 천재라는 측면입니다. (적어도 7개국어에 능통했다고 함.) 그리고 이 하네만의 어학적 재능이 실질적으로도 호메오페시의 탄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게 됩니다.


자신의 어학능력을 이용하여 하네만은 다른 나라의 의학서적을 번역하는 일에도 열정적인 의욕을 지녔는데, 그가 당시 의학계의 어떤 권위있는 문헌을 번역하고 있을 때 이 호메오페시에 대한 착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네만이 번역하고 있던 그 서적에는 말라리아의 치료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해놓고 있었습니다. “--말라리아에는 키나껍질을 복용하면 효과가 있다. (*주; 키나껍질 속에는 퀴닌(Quinine)이라는 화합물이 주 성분으로 들어있다) 그것은 맵고 수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번역하면서 하네만은 소박한 의문을 가지게됩니다. 단순히 맵고 수렴성이 있다는 사실과 말라리아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닐까? 키나껍질보다 더 맵고 수렴성이 있는 것을 복용하더라도 말라리아 치료에는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키나껍질이 말라리아에 효과가 있는 것에는 무언가 전혀 다른 원인이 있는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였던 거지요.

이렇게 생각한 하네만은 대담하게도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 임상실험을 실행해 봅니다. 자신이 스스로 키나껍질을 조금씩 복용하면서 자신의 몸에 나타나는 반응을 객관적으로 관찰해보았던 거지요. 그 결과, 열과 오한을 비롯해서 마치 말라리아에 걸린 것과 비슷한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관찰을 토대로 하네만은, “키나껍질을 복용했을 때 말라리아 치료효과가 있는 이유는 그것이 매운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병을 일으키는 증세가 말라리아와 닮았기 때문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이것이 호메오페시의 기본이 되는 “동종요법(Likes cure likes)”의  개념이 됩니다. (*주1)


(현대의학적인 약물요법개념으로 생각한다면, 키나껍질을 복용했을 때 말라리아 치료효과가 생긴다면 아마도 끼나껍질속에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일종의 화학물질이 포함되어있는 탓일거라고 판단하게될 것입니다. 하지만 키나껍질속에 주로 함유되어있는 퀴닌(Quinine)이라는 화학물질은 말라리아 치료물질이 아니라 일종의 독성물질입니다. 이 퀴닌을 과량복용하면 말라리아에 걸린 것과 유사한 증상이 유발되게 됩니다.)

 


*주1;
하네만이 이 호메오페시 치료법을 의학잡지에 발표--Essay on New Curative Principle-한 것은 1796년인데 이때는 기구하게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젠나가 미량의 우두투여가 천연두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한 바로 그 해였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젠나의 이 발표는 그후 지금까지의 의학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된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네만에 대한 당시 의학계의 반응은 참담한 것이었다.

하네만이 당시의 의사들, 특히 약제사에게 집중적으로 미움을 받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호메오페시에서는 소량의 약, 그것도 기본적으로는 한종류밖에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약제사로서도 매상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것이었다. 총체적으로 호메오페시는 그 개념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전통 제도권의학에 역행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하네만은 약제사의 조제가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자기가 조제를 시작, 이것이 원인이 되어 체포, 추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여러가지 압력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호메오페시는 19세기 이후 유럽에는 널리 사회에 보급되었다. 특히 마크 트웨인, 디킨스 등 유명 문학가를 비롯해서 록펠러와 영국황실 그리고 로마 교황 등의 유명인사층의 강력한 지지가 지속되어졌다. (영국에서 호메오페시는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왕실전용” 치료요법이 되어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페니실린 항생제의 발견을 시작으로 현재와 같은 약물요법이 치료법의 주류를 차지하게되고서부터 호메오페시 치료법은, 특히 미국에서 차디찬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그럼에도 역사는 다시 돌고 도는 것.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화학물질을 투입하는 약물요법의 폐단이 심각해짐에 따라 그 보완책으로서  대체의료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졌고 호메오페시는 그 중 하나로서 다시 재조명되어 이제는 확고한 위치를 쌓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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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허창욱 박사;

1960년 부산에서 출생. 1983년에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화학과를 졸업하였고 91년2월에 동대학원에서 이학박사를 취득한 후 95년 초까지는 대덕연구단지 LG 첨단기술연구원 정밀화학연구소에서 신규제초제개발 프로젝트리더로 근무하였다. 대학재학시절에 서울대 명상요가회 동아리를 창립하고 제2대 회장을 지낼 정도로 (과학도로서는 드물게)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후 94년도에 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 몇몇 박사과학자들과 함께 한국정신과학학회를 창립하는 주역 중 한사람으로 활동하였으며 95년 초부터 (사)한국정신과학학회 상임이사로 재임하면서 몇몇 동료들과 함께  (재)한국정신과학연구소 설립을 준비하고 97년 초까지 초대감사를 역임하였다.
97년 이후부터 그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겨, (주)한마음에너지과학연구소 신과학정보센타 센타장으로 재직하면서 청정대체에너지 장치 개발에 관계하였고, 동시에 여러 학술단체와 다양한 저술활동을 통해  ‘기의 과학화’와 새로운 과학패러다임으로서 ‘신과학’을 소개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97년 2월부터 6월까지 KIST에서 ‘공간에너지 신기술 조사연구과제’의 실무위원으로 참여하여 일본과 미국 등 신과학의 세계적인 동향을 국내 과학계에 최초로 소개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21세기를 맞이하여 (주)한국엠알티 고문이사로 재직하면서 ‘대체에너지개발’에 이어 ‘기와 생체에너지의 연구 및 대체의료의 개발’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저서로는 <꿈의 신기술을 찾아서-일본탐방편>(양문, 1998), <신과학으로 풀어보는 피라미드에너지>(모색,1998), <반중력의 과학>(모색,1999) 그리고 역서로는 <우주와 생명>(공역,김영사,1996), <아인슈타인은 틀렸다-빅터 샤우버거 이야기>(양문,1998) 등이 있다. 현재까지 관계하고있는 사회활동으로서는, (사)새문명아카데미 이사, (사)생태산촌만들기모임 운영위원, (북클럽)미내사 국제신과학심포지엄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하고있다.

 

출처 : 힐링툴 (치유의도구들)
글쓴이 : 알파웨이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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