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는 한생각의 힘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는 한생각의 힘
“마음 도리를 모르면 백 보를 뛰어도 종종걸음에 불과하고
이 도리를 알면 앉은 자리에서 한생각에 천만리를 드나들 수 있다.
마음이 주인이자 부처이므로
한생각 일으키면 문수요 움직이면 보현인 것이니
한마음 자리에서는 부처·문수·보현이 따로 없다.
한생각이 곧 법이라 마음의 중심을 쥐고
한생각 낼 때는 우주법계가 들썩들썩하는 이치가 있다.
마음 도리를 알면 우주 방방곡곡이 내 앉은 방석이라
손 발이 두루 미치지 않는 데가 없다. .”
나는 우주의 중심이다.
저 하늘 어디 머나 먼 별이 우주의 중심인게 아니라
내가 바로 이 우주의 중심이다.
아니,
중심인 정도가 아니라 내가 곧 우주요 우주가 곧 나이다.
다즉일 일즉다(多卽一 一卽多),
불가의 가르침은 그렇게 말한다.
전체와 하나는 둘이 아니라고 한다.
바닷물을 다 마셔보지 않고 단 한방울로도 그 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다고 한다.
형상으로 보면 나와 우주가 같을 수는 없지만
마음의 도리에서 보면 나는 우주의 중심이자 우주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고로 우주가 아무리 광활하다해도 몸이 아닌 마음으로는 앉은 방석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나아가서는 내 마음 안에 다 집어넣고도 빈 자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음 세계에서 형상의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커도 다 안을 수 있고 아무리 작아도 다 들어갈 수가 있다.
역시 거리도 문제가 되질 않는다.
멀다고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가깝다고 더 빠르지도 않다.
그냥 찰나 간에 다 포섭할 수가 있다.
그러니 어찌 크다 작다, 멀다 가깝다를 말하겠는가.
다만 한생각 일어나는 그 찰나에 두루 미치지 못할 곳이 없다고 할 뿐이다.
그것도 빛보다 빠르게,
그리고 굳이 시간으로 말한다면 동시에
우주 구석구석까지 한생각의 파동을 전한다고 말해진다.
둥근 공의 표면에 아무데고 한 점을 찍어보자.
그 점으로부터 공의 표면을 따라 사방 아무 방향으로든 선을 그으면
그 거리는 언제나 같다.
그와같이 나는 언제나 우주의 중심점이 된다.
또 우주는 내가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한다.
본질에 있어서는 그림자같고 물거품 같은 세계이지만
우주는 나의 인식세계에서 내가 인식하는 동안에만
하나의 형상으로 존재한다.
내가 눈을 감으면 우주는 사라진다.
내가 없다면 우주는 다 무엇이겠는가.
고로 나는 우주의 중심점이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인다.
그 파동은 수면을 타고 호수 전체로 퍼져 나간다.
돌이 떨어진 그 자리가 파문의 중심점이다.
나의 한 생각은 마치 호수에 던져진 돌처럼 우주 법계에 파동을 일으킨다.
그 파동은 나를 중심점으로하여 전 법계로 퍼져간다.
찰나에 빛보다 빠르게 전개된다.
내 한 생각에 우주가 들썩거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손가락 하나를 들어 우주를 떠받친다고 한다.
내 한생각이 그대로 법이라고 한다.
내가 곧 우주의 중심이요 내가 곧 우주의 주인임을 믿는가.
아니면 보잘 것 없는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부처님께서 일찍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셨다.
내가 곧 중심이요 내가 곧 주인임을 설하신 것이다.
내 한 생각이 곧 법이요
내 한생각의 힘이 우주를 들쏙거리게 한다는 법문을 하신 것이다.
하늘을 가리키며 하늘의 중심임을 갈파하셨고
땅을 가리키며 땅의 주인임을 증명하셨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믿지 않고 스스로를 이 육신에 갇힌 왜소한 존재로 생각하고 만다.
믿음이 약한 탓이다.
마음의 도리,
마음의 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인임을 믿지 못하면 고작 하인 노릇밖에 할 게 없다.
경계에 짓눌리고 운명에 끌려다니는 종 노릇밖에 못한다.
한 생각이 곧 법임을 믿지 못하면
기껏해야 남에게 의지하고 주변 상황에 끌려다니는 존재에 불과하게 된다.
내가 주인임을 굳게 믿자.
내가 중심임을 굳게 믿자.
그러면 나의 한생각은
바윗돌처럼 우주라는 호수에 큰 파동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묵거 혜덕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