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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처님의 십대제자와 아라한에 대해서...

因緣 2013. 11. 25. 11:34


◉ 십대 제자 : 


영산(靈山)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던 영취산을 말한다.

또 영산 당시란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설법하시던

시기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에서 가장 전성기였으며,

이 시기에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을 말씀하셨다.



 

영취산(靈鷲山)은 산에 독수리가 많다 하여 영취산이라고 부른다는

설과 산꼭대기가 독수리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이와 같은 이름이 정해졌다는

두 가지 유래가 있는 유명한 산이다. 대표적인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는 영취산에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장면을 내용으로 형상화한 불화이다.


부처님께서는 그 유명한 3대 선언 가운데 성불선언을

바로 이 영산에서 말씀하셨다.

3대 선언이란 인간선언(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신 직후),

중도선언(녹야원에서의 초전설법시), 성불선언을 말한다.

성불선언이란 ‘여래의 말씀을 따르는 이는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서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선언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량한 가피력을 주시면서

불법의 수호를 직접 부탁하셨는데, 부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부탁을 위촉받은 것을 수불부촉이라고 한다.





① 사리불[舍利弗, Sariputra - 지혜(智慧)제일] :


사리붓다(舍利弗多), 사리자(舍利子)라고 하는데,

바라문 족 출신으로 육사외도의 한 사람인 회의론자 산자야를 섬기어

7일만에 그의 교지(敎旨)를 통달할 만큼 뛰어났다.

 

그래서 사리불은 산자야의 신뢰를 받았으며 목건련과 함께

산자야의 제자 250 인을 통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고(苦)를 끊지 못하고 궁극적인

깨달음을 성취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불제자 앗사지(阿設示)를 만나 제법무아(諸法無我)와

연기(緣起)의 이치를 깨닫고 목건련과

함께 제자들을 데리고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증일아함경』권3 <제자품>에는 “지혜가 무궁하여 모든 의혹을 푸는 데에는

 바로 사리불 비구가 제일이다."라고 되어 있다.

부처님이 입멸하기 전 목건련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사리불도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고 자기 고향인

나알라다 촌으로 가서 바로 입멸하였다고 한다.




② 목건련[目犍蓮, Maudgalyayana - 신통(神通)제일] :


마가다국 왕사성 밖의 콜리타촌 사람으로 바라문족 출신이다.

사리불과 함께 산자야의 제자였다가 죽림원에서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부처님의 십대 제자 가운데 신통력이 가장 뛰어났던

목건련은 부처님보다 먼저 입멸하였다.

 

어느날 목건련 존자가 천안통(天眼通)으로 지옥을 보니

그 곳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효심이 지극했던 목건련 존자는 바로 부처님께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구제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물어서 어머니를 천도했다고 한다.

위의 <제자품>에 “신족(神足)이 경거(輕擧)하여 시방(十方)에 비도(飛到)함은

대목건련 비구가 제일이다."라고 되어 있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10대제자 중에서도 가장 상도(上道)의 제자였지만

부처님보다 먼저 입멸하였기 때문에 부처님 입멸 후의 교단은

자연히 그 다음 서열인 가섭에게 돌아갔다.

신통이 뛰어난 목건련이 무서워 다른 종교인들이

함부로 불교교단을 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에게 신통을 쓰지 말 것을 지시했고,

그가 신통을 쓰지 않는 것을 안 다른 종교인들이 그를 길에서 때려죽였으나,

그는 죽으면서도 신통을 쓰지 않았고 마음의 평정 또한 잃지 않았다고 한다.




③ 마하가섭[摩訶迦葉, Maha kasyapa - 두타(頭陀)제일] :


대가섭 또는 그냥 가섭 가섭파(迦葉波)라고도 하며

소욕지족(少欲知足)하여 항상 두타행(頭陀行)을 하였다.

왕사성에서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결혼하였으나

세속적 욕망의 무상함을 깨닫고 부인과 함께 출가하였다고 한다.

 

부처님께 귀의한 지 8일 후 바른 지혜를 내어서

곧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했다.

<제자품>에 “십이두타(十二頭陀) 난득(難得)의

행은 대가섭이 제일이다."라고 되어 있다.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해 받은 마하가섭은 부처님이 입멸하시자

오백명의 아라한을 데리고 칠엽굴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편찬하는 제1결집을 했다.

이때 가섭은 모든 대중들을 통솔하는 상수(上首)가 되어 결집을 지휘했다.

특히 선가(禪家)에서는 부처님 심법과 법맥을 전한 제1대 조사로 받들어지고 있다.




④ 아나율[阿那律 Aniruddha - 천안(天眼)제일] :


아니루타(阿尼樓陀)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서 아난다,

난디, 데바닷타 등의 왕족과 함께 출가하였다.

 

기원정사에서 부처님 앞에 앉아 졸다가 부처님에게 꾸중을 들은 일이 있었다.

아나율은 그 후 밤낮으로 자지 않고 수도 정진하다가 그만 눈이 멀었다.

 그러나 그는 육신의 눈은 잃었지만 참 지혜의 눈인 천안통(天眼通)을 얻었다고 한다.

눈이 나빠 바늘구멍을 찾지 못하자 부처님이 손수 그의 옷을 꿰매어 주었다고 한다.




⑤ 수보리[須菩提, Subhuti - 해공(解空)제일] :


수부리(須扶提)라고도 하며, 사위국 바라문족 출신 이다.

수보리 존자는 지혜가 총명하여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에는 성품이 악하여 모든 것에 성을 잘 냈다고 한다.

수보리는 부모친족이 자신을 싫어하자 집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갔고

여기서 선인을 만나 부처님께 인도되어 불법에 귀의했다.

 

동 <제자품>에는 “항상 공정(空定)을 즐기고 공의 이치를 분별하는 것은

수보리 비구가 제일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공사상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반야부 경전에는 항상 수보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신자들의 공양을 누구보다도 잘 받아서 피공(被供)제일이라 불렸는데,

언제나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공양을 받았다고 한다.






⑥ 부루나[富樓那, Purnamaitrayani - 설법(說法)제일] :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의 약칭이며,

바라문족 출신으로 생년월일이 부처님과 같다고 한다.

동 <제자품>에는 “능히 법을 광설(廣說)하여 의리를 분별하는 것은

만원자(滿願子, 부루나) 비구가 제일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는 수로나국의 사람들이 포악하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의 허락을 얻어

그곳에 가서 오백 명의 우바새 들에게 설법해서 그들을 교화했다고 한다.

가장 난폭한 수로나국 사람들마저도 교화할 만큼 부루나 존자의

언변과 설법은 감동적이고 훌륭했다고 한다.

 

그는 대도시 포교의 안일한 삶을 버리고 주로 변경지방의 포교에 전념했다.

부루나 존자의 설법을 듣고 불법에 귀의한 수로나국 사람들은

오백 개의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⑦ 가전연[迦旃延, Maha katyana - 논의(論議)제일] :


서인도 아반티국의 왕족계급 출신으로 국왕의 명을 받아 부처님을 영접하러

갔다가 불법을 듣고 출가하였다.

그는 불법에 귀의한 뒤 뛰어난 언변과 말솜씨로 논리 정연하게 상대방의

주장을 꺾음으로써 논의제일이라고 칭송 받았다.

 

부처님 당시는 수많은 종교 사상이 군웅할거 하던 시대였으므로

포교를 하기 위해서는 논리 정연한 설법을 통해서 상대방의 생각이

틀렸음을 일깨워 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경전 곳곳에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다른 종교인들과

토론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가전연 존자는 바로 이들

외도와의 교리 논쟁에서 지는 법이 없었으며

뛰어난 말솜씨로 널리 불법을 폈다고 전한다.







⑧ 우파리[優婆離, Upali - 지계(持戒)제일] :


수타라족 출신으로 부처님이 출가하시기 전에는 싯달타 태자의 이발사였다.

아난, 난타 등 석가족 출신의 남자들이 출가했을 때 그들의 머리를 깎아

주었으나 천민이라는 이유로 함께 출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의 출가를 허락하시고 세속에 있을 때에는

지위의 고하와 종성의 차별이 있지만 일단 불문에 들어오면

 차별 없이 평등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부처님의 십대제자들은 대부분이 바라문족이거나 왕족계급이었는데

우파리 존자만 유일하게 노예(수드라)계급 출신이다.

 

그러나 우파리 존자는 바로 부처님의 교단이 계급과 종성에 평등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노예계급 출신이

종교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교단에서 계급 평등을 실현하셨다.

우파리 존자가 바로 그 증거인 것이다.

우파리 존자는 계율을 가장 잘 지켰으며,

그리하여 불멸 후 제1회 결집 때에 우파리 존자가 율(律)을 외워 냄으로써

율장(律藏)을 결집하게 됐다.







⑨ 라후라[羅睺羅, Rahula - 밀행(密行)제일] :


라후라 존자는 부처님의 친아들이다.

이름 라후라는 태자 싯다르타가 아들의 출생을 보고 붙인

이름으로 ‘장애(障碍)’라는 뜻이다.

 

그는 15세 때 부처님이 카필라국으로 설법하러 가셨을 때

어머니와 함께 출가했다. 사리불을 스승으로 출가함으로써

최초의 사미계를 받았다. 출가 이후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행과 수행에 철저하였기에 밀행제일이라고 불렸다.

 

동 <제자품>에는 “금계(禁戒)를 깨뜨리지 않고

송독(誦讀)을 나태하게 하지 않음은 라후라 비구가 제일이다."라고 되어 있다.






⑩ 아난다[阿難陀, Ananda - 다문(多聞)제일] :


아난(阿難)이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종제이기도 한 아난 존자는

늘 부처님 곁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아난 존자는 제1회 결집 때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외워 냄으로써 경장(經藏)을 결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모든 경전에는 “내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는 뜻으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란 문구가 붙게 된 것이다.

이 밖에 아난 존자는 부처님의 이모 마하파자파티가 출가할 수

있도록 부처님께 간청하여 허락을 얻어냈다.

이것은 여성의 출가를 가능토록 한 일이었다.









※ 이상 10대제자에 대한 예경에 이어 16아라한 내지 500아라한,

 그리고 홀로 도를 닦아 아라한의 경지를 이룬 독수성에

대한 예경을 행하고 있으며,

마침내 부처님 재세시의 1250명의

대아라한에 대한 예경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라한(阿羅漢, arhan)은

응공(應供), 살적(殺賊), 불생(不生), 무생(無生), 응진(應眞), 진인(眞人) 등으로 번역된다.

소승불교에서 최고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성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응공’은 중생들의 공양에 마땅히 응할 수 있는 이들이며,

 ‘살적’이한 번뇌의 적을 죽여 없앤다는 뜻이며,

그들은 열반의 세계에 들어 또다시 태어남을 겪지 않으니

 ‘불생’ 또는 ‘무생’으로 불리는 것이다.

또 우주의 모든 진리를 터득하였기에 ‘진인’ 또는 ‘응진’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찰의 전각 중에 응진전(應眞殿)은 바로 이러한 아라한들을 모시는 건물이다.



◉ 십육성(十六聖) : 


부처님은 열반에 이르를

즈음 16명의 아라한과 그들의 권속들에게 무상법(無上法)의 진리를 부촉하셨으며,

그들 아라한들은 불법을 호지(護持)한 채 이후 미륵불께서

세상에 출현하실 때까지 모든 중생들의 복전(福田)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이름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빈두로파라타, 가낙가벌차, 가낙가발리타사,

소빈타, 낙거라, 발라타, 가리가, 벌서러불다라, 술박가, 반탁가, 라호라

나가서나, 인게타, 벌나바사, 아씨다, 주다반탁가 이상 16명의 아라한들이다.



◉ 오백성 및 천이백제대아라한 : 


500명의 아라한에 대하여 몇 가지 설이 있다.


<오백성>


①『법화경』<500제자 수기품>에 기록된 500명의 제자들,

    이후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것이라고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수기를 받은 500제자


② 부처님 열반에 드신 그 해 왕사성 칠엽굴에서 마하가섭을 상수로

    1차 경전 결집 때 모인 500명의 비구


③ 부처님 열반 이후 600년 지난 후, 인도의 카니시카 왕의 후원으로 협존자 및

    세우존자가 상수가 되어 4차 경전 결집을 행하여 경․율․론 삼장을 재해석한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200권을 집성할 때 모인 500명의 비구


④ 인도 아쇼카 왕의 4대손 불사밀다라 왕은 아쇼카 왕이 쌓은

    모든 탑을 허물고 비구들을 죽여 당시의 불교를 소멸시킨 후에

    다시 500비구를 불러모아 불법을 중흥시켰는데, 이 때 참여한 500명의 비구



<천이백제대아라한>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을 보면 1250명의

   아라한에 대한 내용이 있다.


“야사(耶舍)장자 아들의 친구 50인과, 우루빈라가섭․나제가섭․

가야가섭 3형제와 각각의 제자 500인․250인․250인과,

사리불과 그의 동료 100인과, 목건련과 그의 동료 100인을 합한 것을 말한다.

 

이 1250인은 먼저 외도를 섬겼으나 뒤에 부처님의

 교리를 받아 증과(證果)를 얻었다.

이들은 부처님의 은혜를 느껴 법회 때마다 항상 곁을 떠나지 않았으므로,

모든 경의 첫머리에 대중을 열거하는데

흔히 1250인이 나온다.”


이상에서 ‘1250명의 대아라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볼 수 있는데,

법화경』설명에 의하면 이들 1250명의 대아라한 역시

부처님으로 수기를 얻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음카페에서 퍼온 글...


출처 : 동심원(사랑과 자비 그리고 상승으로)
글쓴이 : 나두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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