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고급영과의 대화
(지상에 살았을 때의 이름은 '크레스킬'이었다)
-당신이 거주하고 있는 세상은 어떠한 곳인가?
우리는 낮과 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지구 축의 회전에 영향을 받지 않고 태양 주위를 회전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게는 불멸의 빛이 있어서 인간 세상에서와 같은 시간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종말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어서 영원히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영의 세계로 가게 될 때 어떠한 형태나 상(像)을 갖게 되는가?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갖고 있는 의문일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땅 속에 묻혀 썩거나 한줌의 재로 변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바, 그러면 인간의 형체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비록 육체 이외의 영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연기와 같은 형체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서는 우리는 분명한 실체를 가지고 있다. 지상의 육체 세계에서는 육체가 실체로서 만져보면 단단하게 느껴질 수가 있으며 영이 어렴풋하고 실체가 없으며 만져지지 않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반대로 영혼이 만져질 수 있는 실체이며 오히려 지상의 육체를 가진 인간들이 어렴풋하고 만져지지가 않는다.
영혼은 육체가 죽을 때 그 육체에서 떨어져 나와 모든 상황을 내려다볼 수가 있다.
내가 죽었을 때의 상황을 이야기해 보자.
나는 백인들의 습격을 받고 어깨와 허리, 그리고 목에 총을 맞아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었다.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이따금 정신이 들락날락하는데 옆에서 나의 시종들이 기도를 하며 근심어린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자 돌연 나는 공중으로 서서히 들리워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몸은 아래 침상에 그냥 그대로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내가 위에서 아래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다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이상한 생각이 들면서 사태가 전혀 납득이 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끈이 잘린 풍선처럼 자유로운 느낌을 맛보게 되면서 격심한 고통에서 해방되어, 평온함과 충만함을 맛보는 듯하였다.
공중에 들리워진 나 자신을 만져보니 내 몸의 느낌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우리는 보통 죽은 사람의 영혼을 가리켜 유령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유령의 모습을 정확히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분명히 말하건대 우리 영혼의 세계에 살고 있는 혼들은 유령이 아니다. 분명히 몸을 가진 실재의 개체로서 서로서로가 구분되어질 수 있는 용모도 지니고 있다. 지상에서의 인간들은 그곳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감각기관, 즉 말하고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는 데 필요한 감각기능을 갖고 있듯이, 영적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영혼들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완전한 영(靈)의 장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형체도 있고 모습도 있으며 개성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육체적 구조와 다른 형태의 영적(靈的) 구조를 가졌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영적 세계를 경험한 사람, 다시 말해서 육체적으로 죽었다가 영이 빠져 나간 후 영적 세계를 얼핏 보고 다시 살아와서 살아난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자.
“순간 내 손을 잡아 보았더니 작은 조직을 내부에 가지고 있는 빛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미세한 지문의 소용돌이 모양도 볼 수가 있었고, 빛의 관(管)이 팔까지 퍼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경험을 종합해볼 때 영혼은 이른바 기(氣)라고, 막연하지만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현상(現像) 같은 것이 영체(靈體)의 본령인지 모르겠다는 결론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 세계에서 영체를 만져볼 수가 없는, 즉 감각으로는 그 실체를 확인할 수가 없듯이 영혼 역시 지구 세계의 인간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서로가 상대를 만져보아 느낄 수가 없는 바, 다만 인간이 영혼을 보지도 못하는 데 대해 영혼은 인간 세상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영의 세계에서는 영혼이 실체이고 만져볼 수 있지만, 인간 세계에서는 인간이 실체이고 영혼을 만져볼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영혼의 세계는 전 인류의 영이 자유자재로 내왕할 수 있어 의사소통에도 지장을 받지 않는다. 얼핏 생각하면 영적 세계에서는 미국인 영, 한국인 영, 독일인 영, 인디언 영 등 세계 각 인종의 영들이 함께 섞여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다. 영혼들은 상념에 의해서 서로의 뜻을 헤아린다. 상념(想念)을 다른 영에게 보내고 그 상념을 받은 다른 영이 그 뜻을 이해하고, 그래서 의사 교환을 한다.
이처럼 우리 세상, 즉 영혼의 세계에서는 상념이 실재한다.
존재하는 것은 상념으로부터 나오고 그 결과로서 영혼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념이 지배하는 우리 영혼의 세계에서는 무엇이나 마음대로 이루어질 수가 있다. 무엇을 원하든, 무엇을 하든 생각만 먹으면 다 소유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의식주 모든 것을 돈을 지불하고 사는 일이란 없기 때문에 소유를 위한 생존경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 정말 평화로운 낙원인 것이다.
물론 우리의 세계에도 대양, 산, 강, 호수, 꽃, 동물, 새들도 있다. 이 영혼의 세계에 오기 전에 지상에서 음미했던 모든 종류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으며, 다만 이러한 아름다움의 대가를 비불하지 않고서도 마음대로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물질의 소유라는 개념이 없다면 영계에서는 권력을 얻기 위한 탐욕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게 아닌가?
탐욕과 권력은 아스트럴 영역 이하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개개인은 죽음 이전이나 이후나 같다. 다만 인간 세상과는 다르게 영의 세계에는 상념이라는 것이 주된 실체가 된다는 것이다.
영의 세계에서는 물질적인 것, 감각적인 것은 그림자에 불과하고 생각하는 것, 즉 상념이 실체다. 영혼의 세계에서는 상념만으로 모든 것을 창조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생각만 갖는다면 무엇이나 이루어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세상에서 통하던 탐욕과 열망하던 그 모든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속세의 탐욕이 사라질 때 비로소 세속적인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준비가 될 때, 그들은 이 이 영혼의 세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권력에 대한 열망과 탐욕은 속세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지 못하게 한다. 세상을 아직도 속박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영들은 육체적으로 죽어 있음과 동시에 영적으로 죽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영혼 세계보다는 인간 세상에 더 가까이 있다. 불행히도 권력과 탐욕으로 인간 세상을 살아온 그들은 그러한 권력과 탐욕을 아직도 추구할 때 그것은 자기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기는커녕 해(害 )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영적인 세계가 점차 세속적인 이 세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인간 세상이 그러한 변화를 겪는 기간이 있다고도 볼 수 있는가?
그렇다. 영의 세계는 인간 세상으로부터 오는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영혼의 세계에 있는 영혼들은 인간 생활에서 온 사람들의 영혼이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탐욕에 젖어있는 사람들의 영혼이 우리 영적 세계로 돌아와서 인간 세계에서 살던 그 모습대로 살아가려 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영혼들은 인간 세계에 당신과 같은 사람들, 즉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인간 세계에 경고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 영혼의 세계의 특사라고 할 수 있는 메신저들은 인간들을 끊임없이 계몽시키고자 한다.
살아 있는 동안에 악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거나 폭력과 탐욕, 이기주의와 물질주의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말로가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그 죄악은 당대나 후대에게 분명한 징계가 있음을 보여줌으로서 선하게 변화되기를 유도하고, 또한 사회악은 끔찍한 전쟁을 통해서 집단적인 응징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현실로 증명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전쟁이 지구상에서 벌어졌고 그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피해를 본 것을 경험해왔다. 이러한 전쟁의 규모나 피해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 커져가고 있다. 그것은 그만큼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악하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많은 전쟁에서 죽어가는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죄값을 치르는 것인가 하고 혹자는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죽어가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악한 자보다는 오히려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승자는 악한 사람이고, 패자는 선한 사람이이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인간에 대한 심판이 당대에서도 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간 세계에서의 승자는 영원한 승자라고는 할 수가 없다. 악한 행위로 승자가 되어 인간 세계에서 온갖 향락을 누리고 승리를 만끽한다 해서 그것이 승자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보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간은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 세상 자체가 혼돈되어 있고 너무나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심판을 볼 수 없는 데서 단정짓는 것이다.
인간들은 이렇게 불평하기도 한다. 가만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선을 행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잘살고 편히 지낸다고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이 상당히 오랫동안 평안을 누리는 것 같지만 그것은 육체를 지니고 살고 있는 동안만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하는 불평이다.
육신의 세계는 순간이고 영혼의 세계는 영원하다.
온갖 악을 범하고도 순간을 향락한 사람은 영원한 영적 세계에서 그보다 몇 배, 아니 몇 천, 몇 만 배의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당신들도 알다시피 우리 인디언들은 참으로 많은 고통을 받아 왔다. 우리가 평화를 만끽하며 살아왔던 곳에 백인들이 침입해서 우리를 학살하고 그 씨를 말리려 했다. 그러한 사람들은 지금 우리 영혼의 세계에 와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네들이 알다시피 지상에서도 많은 벌을 받고 있다.
현실의 미국 사회를 가만히 들여다 보라. 아니 침략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백인들의 후예는 마약과 폭력, 그리고 각종 무서운 질병으로 인해 그 육체가 고통 받고 사회가 썩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범한 죄로 인하여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영적인 세계에는 지구로부터 오는 사람들의 영혼들이 거주하고 이들로 구성되어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영계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가? 지구의 오른쪽에 있는가, 왼쪽에 있는가, 아니면 더 확장된 먼 곳에 있는가? 그리고 인간의 영이 아닌 다른 영계도 존재하는가?
영계는 무한하다. 삶은 무한하다. 인간 세계는 이 우주에서 하나의 반점(斑)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여러 다른 지구나 또는 영계가 존재하는가?
물론 영계에도 영역이 있다. 그 범위 내에서 삶은 무한하다. 인간은 조그만 머리로 목성이나 금성에도 생명이 존재하느니, 존재치 않느니 떠들어대고 있으나 이 우주, 즉 우리 영혼이 존재하는 영역은 그보다 더 먼 곳에도 있다.
인간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영혼의 세계가 어디 있느냐 하고 부인한다. 물론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 세계에 아직도 각종 악이 횡행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영혼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을 확신한다면 그 짧은 인생살이 기간 동안에 죄를 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순간적인 향락을 위해서 무한한 삶을 고통으로 지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궁극적이고 완전한 세계가 영의 세계라면 물질 세계가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 마디로 족할 것이다.
“왜 너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가?”
인간은 배움을 통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터득하고, 터득한 지식을 통해서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종국에는 삶, 그 이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이 세상을 감성적으로만 대하게 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배움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제공하는 것이 물질 세계인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배움의 터인 학교와 생활 현장이 필요한 것처럼 영혼의 세계에 들어오기 전에 물질 세계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영의 세계에 들어와서 완전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인간 세계라는 물질 세계가 필요한 것이다.
물질계와 영계, 그리고 무한한 우주, 이것들은 모두 인간들은 신(神 )이라고 부르고, 우리 영혼의 세계에서는 ‘위대한 영’이라고 부르는 뛰어난 힘과 능력을 지닌 ‘힘’이 창조한 것이다.
그 ‘힘’은 가장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 ‘힘’은 ‘무한’이고 알파도 오메가도 없다. 즉 시작과 끝이 없다. 그것은 최고의 지혜이고 사랑이고 무한한 존재이다. 다만 자연의 법칙만이 영의 세계를 지배할 뿐이다.
인간 세계의 법은 뜻밖의 상황이 생기면 변화하기 마련이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개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은 완전하다. 자연의 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떠한 경우에든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실로 인간의 필설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장엄함이다.
나는 백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지금까지 영혼의 세계에서 살아온 만큼 현재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보다 오래 살아오고 있다.
이런 오랜 삶을 통해 내가 이 영혼의 세계에서 경험한 바 자연의 법칙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자연 법칙에는 눈꼽만큼의 오류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영혼의 세계에서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질서가 일사불란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조금도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고 혼돈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연의 법칙이 최선의 질서를 창출해내는 것은, 그 근본에 선(善)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선을 근본으로 지향하는 한 마찰이 발생할 수 없다. 인간 세계에서도 이처럼 선이 지배한다면 그 사회가 정의롭고 평화롭지 않을 수 없다.
인간 모두가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는 일 없이 오직 봉사로 일관하면서 남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때, 다시 말해서 자연 법칙에 따르면서 살아갈 때 건강과 행복, 영적인 광휘와 심적 충만을 가져오는 최고의 선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지에 이를 경우는 잠재된 신성(神性)의 일부나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한에 속하는 자연 법칙을 유한한 마음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을 시도하는 중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영과 영, 특히 위대한 영과도 의사 소통을 하는가?
인간 세상에서의 의사 소통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인간들은 말하고 글로써 의사 소통을 하지만 영적 세계에서는 그러한 언어와 문자가 통하지 않는다.
영적 세계는 완벽한 세계이다. 무엇이고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인간의 세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유한하여 표현에 제한이 있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무한의 세계를 일일이 지적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색깔을 표현함에 있어서 대개 그 표현이 10가지 정도로 제한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빨강, 파랑, 노랑, 보라, 검정...... 등등.
그러나 색깔의 세계는 무한하다. 아마 수천가지로 분류도 할 수 있다. 우리 영적 세계에서는 이러한 모든 색깔을 다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으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기 좋은 꽃’이 있다고 하자. 그 보기 좋은 꽃을 표현함에 인간들은 ‘아름답다’, ‘예쁘다’, ‘곱다’ 등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우리는 감정(feeling)으로 의사 소통하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묘사가 가능하다. 모든 것이 완벽한 우리 영적 세계에서는 최고의 경지에서 ‘느낌(feeling)’으로 마음대로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서도 위대한 영과 보통 영 사이에서는 알게 모르게 엷으나마 차이가 있다.
-그러면 위대한 영은 우리 인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영과의 관계를 맺고 있다. 왜냐하면 위대한 영은 언제나 인간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지금도 살아 계신다’고 말하지 않는가. 영은 지금도 인간 안에 있다. 다만 그것이 인간이 육체적으로 죽었을 때 영계로 떠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지금의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우리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인가? 다음 세대에 다시 인간으로 환생을 할 수가 있는가?
그것은 오로지 당신들 인간의 깨달음에 의하여 결정된다. 물론 그 깨달음이 당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 1 백 퍼센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고 영혼의 세계 이곳에서 운명지어주는 데 결정되지만, 아무튼 인간 세계에 거주하는 동안 인간이 얼마나 깨닫고 자연 법칙에 따라 생활했는가에 따라서 많은 참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인간 생활에서 깨달음의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가 없는가?
결정적인 것은 우리 영혼의 세계에서 결정하지만 인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운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가능한 한 그 운을 활용해야 한다.
-당신은 인간 세계에 살았다가 영의 세계로 들어왔다. 당신은 영의 세계에서 어떠한 의식을 가지고 작용하는가?
우리 영혼들은 인간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영역 안에 들어와 있다. 인간들은 우리 영혼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영혼의 세계는 지구 저 너머에 존재하고 있다. 내가 인간 세계를 떠나서 이 영의 세계로 돌아왔을 때 나는 지상에서는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완전한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당신들로서는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깨달음의 세계인 것이다. 우리 영혼의 세계가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인간들에게 말로 설명해주기는 참으로 어렵다. 아무리 설명한다 해도 경험해보지 못한 인간들이 이곳의 삶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각종 제약 속에 살아가고 있어 우주의 한 면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이곳은 인간 세상과는 차원이 높은 세상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영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과 기쁨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인간 세계의 그 어느 것과도 이곳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 영혼의 세계에서는 경제적 문제나 사회적 계급, 인종 차별 등과 같은 문제가 없다,. 영혼의 세계에서는 희다, 붉다, 노랗다 하는 이념적 갈등도, 인종 갈등도 없다.
인간은 나이를 먹고 성숙함에 따라 영의 세계에 점점 접근할 수가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사후(死後)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관심은 예외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생전에 선을 행하고 남에게 봉사함으로써 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지금까지 생활에 대한 후회의 감정, 저질렀던 모든 실수나 과오, 타인에게 소홀했던 그 모든 상처를 되돌아볼 때 가능한 것이다.
인간들 세계는 늘 새로운 문제가 나타난다. 이것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에 부닥치면서 인간은 성장하게 되고 그러한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바로 성장이 정지된 것이나 다름없다. 늘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면서 그 문제를 진지하게 선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선한 방향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드디어 영혼의 세계에 들어와서 그만한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인간들은 인간 세계와 영혼 세계가 시간과 공간상 멀리 떨어진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영혼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바로 인간 세계의 이웃에 있다. 시간적으로 순간인 것은 인간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에 영혼의 세계가 시작되고 공간적으로 바로 이웃인 것은 인간 세상을 떠나는 즉시 영혼의 세계가 전개되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에 대해 틀림없이 그 과보가 뒤따른다고 했는데 그것은 어김없는 법칙인가?
선한 행위에 대해서는 상을 받고 악한 행위에 대해서는 벌을 받게 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죄인과 성자(聖者)가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없음은 정의가 공평하게 평가 받는 영의 세계에서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다. 선은 선을 낳고 악은 악을 초래한다.
따라서 인간이 생존시 어떠한 행위를 하는가에 따라 영혼의 운명도 결정되는 것이다.
인간이 임종의 순간에 후회를 해봤자 이미 시간이 늦은 것이다. 그리고 임종이 가까워서 선을 행한다 해도 지은 죄가 너무 크다면 그 짧은 시간에 행한 선으로 지은 죄를 다 지울 수가 없다고 볼 때, 그렇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죄를 회개하고 선을 쌓아야 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영혼의 세계에도 ‘시간’의 개념이 있는가?
물론 없다. 인간 세계에서는 지구가 자전을 하면서 태양을 공전하기 때문에 낮과 밤, 그리고 계절이 생기지만 영적 세계는 지구의 회전 같은 것이 없다.
오직 ‘현재’만 존재한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이 꿈속에서 경험하는 사실을 미루어 보면 간단한 해석이 가능하다. 꿈 속에서 인간은 과거와 미래를 초월하여 무한한 시간대를 경험한다.
물질적인 말로 비물질적인 영계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인간의 사고와 심적 개념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설명이 제한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깨달음이다. 인간들이 오감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하는 데서 영혼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깨달음’만이 인간의 삶의 표면 너머 위대한 실재(實在 )이해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깨달음을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말’은 인위적인 것이고 영감(靈感)은 지상 언어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끼리의 의사 소통은 영적인 영역 내에서도 같은가?
언어로써의 의사 소통은 인간 세상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인간 너머의 실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공간이란 말은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다. 인간 세상에서의 공간을 지구상으로서의 개념으로 생각하는데 그러나 그것은 상황이고 상태인 것이다.
우리 영혼 세계에서의 삶은 점진적이다. 각각의 상태는 더 높은 상태로 몰입한다. 그리고 또한 연속적인 과정이다. 영적인 상태와 다른 것 사이에 한계를 설정하는 고정된 선은 없다. 다시 말해서 지리적인 선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단계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분명한 위계(位階)의 구분이다.
따라서 한 영역에 거주하는 영혼이 영적으로 더 높은 영역에 사는 영과 의사 소통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영적으로 뛰어난 영역에 있는 고급 영은 낮은 영역에 있는 영과의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의사의 전달 방법은 마음 대 마음이다. 다시 말해서 영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오직 상념과 상념의 교환으로 의사 전달이 되는 것이다.
-영계는 상념의 비밀, 서로 감추고 마음먹은 것과 달리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은 영혼의 초능력을 믿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인간들은 속이고, 거짓말하고, 서로 배반하는 일이 다반사로 가능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꿰뚫어 알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 세계를 마감하고 우리의 영계로 갓 들어온 영혼이 자기가 인간 세계에 있을 때 그 누구도 다 알 수 있는 유명 인사의 이름을 대면서 자랑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 세상에서는 이름은 중요하지가 않다. 세속에서의 평판(명성)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다.
영혼은 그들의 타이틀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의해 평가되어진다. 모든 것이 그대로 보여 지고 드러나는 영혼의 ‘발전 상태’인 것이다. 영혼 세계에서는 속일 수가 없다. 거짓말할 수도 없으며 가식을 부릴 수도 없다. 인간이 이곳에 올 때는 세상에서의 가면은 벗겨지고 있는 그대로 알려지게 된다.
명성이란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인간들은 이처럼 죽으면 다 스러질 뿐인 허망하기 그지없는 명성을 좇으려고 온갖 추한 짓을 다 하는데, 그것은 돈과 물질적인 성공으로 순간의 향락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나사렛 예수는 명성을 추구하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천한 말구유에서 시작하여 나귀를 타고 다녔으며 천한 사람의 발을 씻겨주기까지 했다.
위대한 스승들, 성자들이 자신의 명성을 추구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중요한 것은 명성이 아니라 얼마나 봉사하느냐의 문제이다.
-책 <한마리 까치되어>중에서-
인디언. 그들은 하루 몇 시간씩 명상과 기도를 하는 습관이 있었으며 이러한 생활은 추장이 주재하는 가운데 매우 엄숙히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백인들이 미국땅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는 그들은 평화로운 삶을 살았으며 정신적 지주인 추장을 받들며 일사불란하게 질서있는 생활을 했고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을 말을 타고 달리며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가무를 즐기며 자유롭고 정말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영위했다고 합니다. 주변 모든 것이 풍부하고 서로 보살피면서 돕고 사랑을 나누며 웃음이 기득찬 생활을 했던 그들로서는 자연히 심성이 고울 수밖에 없었지요. 온 지구인들이 그들처럼 살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환란은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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